2026.06.23 (화)
2026.06.24 (수) 수정

✨ GPT-5.5의 요약

유신진화론 이단 결의와 장재호 교수님의 영상을 보며, 처음에는 역겹고 X같다는 분노로 끓다가 결국 사람을 저주하지 않고 무지한 정죄 체계가 무너지기를 기도하게 된 글.

장재호 교수님의 영상을 봤다.1

처음엔 그냥 역겨웠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2026년 5월 28일 제120년차 총회 마지막 날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결의했다는 소식을 봤다.2

처음 든 감정은 그냥 역겨움이었다.

진짜 X같았다.

하나님 이름을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더 정직하게 이해해보려는 시도 앞에서는 왜 이렇게 겁을 먹는지 모르겠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정작 창조 세계를 배우는 일은 두려워하고, 믿음을 지킨다면서 질문하는 사람부터 찍어누른다.

이게 무슨 신앙인가.

그냥 자기 확신 지키기 아닌가.

자기가 배운 좁은 틀 밖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무너질까 봐 벌벌 떠는 것 아닌가.

내가 유신진화론을 100% 다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다. 창세기 1-3장, 역사적 아담, 원죄, 죽음의 기원,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구속 같은 문제는 절대 가볍지 않다. 이건 대충 “과학이 맞으니까 성경은 알아서 접자” 식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라면 더 천천히 다뤄야 하는 것 아닌가. 더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신학자도, 과학자도, 목회자도 붙들고 오래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느 순간 “이단”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 말이 너무 쉽다. 너무 빠르다. 너무 더럽게 편하다.

공부하기 싫으면 이단.
이해하기 싫으면 이단.
내가 감당 못 하면 이단.

이런 식이면 진짜 뭐가 남는가.

창조 고백과 창조 방식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여기서 가장 큰 혼동이 생긴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다”는 고백과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창조하셨는가”라는 설명은 같은 층위의 말이 아니다. 하나는 존재론적 고백이고, 하나는 그 고백을 자연 세계의 지식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다.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생물의 다양성과 인간의 기원을 진화의 틀 안에서 이해하려는 신학적 흐름으로 설명된다. 무신론적 진화론처럼 우주와 생명이 우연히 생겼다고 보는 입장과도 구분된다.3

물론 그 안에 위험한 지점이 있을 수 있다. 역사적 아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타락과 원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죽음이 언제 들어왔는가. 바울의 로마서 5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진짜로 어렵다.

하지만 어려운 질문이 있다고 해서 질문 자체를 이단으로 몰아버리면, 그건 신앙을 지키는 게 아니라 신앙의 사고 능력을 스스로 박살내는 것에 가깝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다 하나님을 버리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진짜 창조주라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더 깊이 배우는 일이 왜 두려워야 하는가. 자연 세계를 공부하다가 기존 해석과 충돌하는 지점을 만났다면, 그때야말로 성경과 세계를 더 정직하게 다시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생각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나는 예전에 민수기가 던진 신앙적 고뇌, ‘도마의 길’에서 찾은 정직한 믿음에서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용기”를 붙잡았고, 의심 많은 나의 신앙에서는 도마를 다시 봤다.

도마는 질문했기 때문에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상처를 확인하려 했던 그 사람이 결국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에 이르렀다.

믿음은 질문을 죽이는 일이 아니다.

질문을 끝까지 통과해서도 하나님 앞에 남는 일이다.

교회를 지키는 척하면서 교회의 지성을 부수는 일

이번 일에서 더 답답했던 건 절차 문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안건은 긴급동의안으로 처리됐고, 연구와 조사 없이 졸속으로 상정됐다는 비판이 나왔다.2 주간기독신문도 서무부가 절차와 형식 등을 이유로 한 차례 반려했지만 본회의에서 긴급동의안으로 다뤄졌다고 전했다.4

그렇다면 더 조심했어야 한다.

이단이라는 말은 그냥 “나는 그 주장에 반대한다”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 그 말은 거의 사형선고처럼 작동한다. 누군가의 신앙, 사역, 연구, 공동체 안의 자리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할 거라면 적어도 충분히 읽고, 듣고, 묻고, 반론을 받고,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 과정을 건너뛰면 남는 건 진리 수호가 아니다. 권위의 과시다. 솔직히 말하면, 영적 갑질이다.

나는 이런 게 너무 싫다. 아니, 싫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역겹다.

하나님을 지킨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자기 세계관을 지키는 것. 성경을 지킨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배운 방식만 절대화하는 것. 교회를 지킨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질문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것.

이건 신앙이라기보다 영적 자기위로에 가깝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그 하나님 바깥에서 고민하는 사람을 위험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방식. 그게 교회 안에서 권위처럼 행세하는 순간, 교회는 세상 앞에서 지성을 잃는다.

이 지점은 얼마 전 동성애 혐오를 신앙이라 부를 수는 없다에서 느꼈던 감각과도 이어진다. 그때 나는 “무지는 신앙이 될 수 없다”고 썼다. 지금도 똑같다. 과학적으로 취약한 주장이나 신학적으로 덜 검토된 확신을 신앙의 권위로 포장하는 순간, 무지는 단순한 빈칸이 아니라 사람을 다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청년들은 그걸 본다.

생물학을 배운 사람도 본다.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씨름하는 사람도 본다. 무신론자 친구에게 어떻게든 복음을 설명해보고 싶은 사람도 본다.

그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단순히 “세상이 좋아서”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때로는 교회가 너무 무식하고 비겁해 보여서 떠난다. 질문하면 같이 고민해주는 곳이 아니라, 질문하면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곳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즘은 AI한테 한 번만 물어봐도 된다. 그 최소한의 정성만 있어도, 기존의 자기 믿음 체계가 얼마나 엉성하게 세워져 있었는지 한 번쯤은 의심해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

심지어 신학생도 그렇다. 교회 내부가 이따구로 썩었으니, 신학생이 물음 없이 사는 법부터 배우고, 신학생이 교회를 떠나고, 신학생이 끝내 무신론자가 되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그냥 다 엎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저런 식으로 하나님 이름 팔아먹는 권위, 질문하는 사람을 찍어누르는 분위기, 무지를 경건처럼 포장하는 문화가 전부 무너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분노의 방향은 사람을 향하면 안 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춰야 한다.

죽어라가 아니라, 무너져라.

내 분노는 여기로 가야 한다.

내 분노가 사람을 향하면 안 된다. 누군가의 영혼이 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면, 나도 내가 혐오하는 그 정죄 구조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무너져야 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다.

무너져야 하는 것은 거짓 권위다. 무지한 정죄 체계다. 질문을 이단으로 몰고, 학문을 배신으로 몰고, 복음 전도의 최전선에서 씨름하는 사람을 내부에서 찍어누르는 교회 문화다.

장재호 교수님 같은 분들이 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교회 밖 무신론자와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자기 확신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시대에 하나님을 더 정직하게 증언하려고 버티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말이 “그거 위험한 거 아니냐”라면, 그 외로움은 얼마나 깊을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싶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화가 조금 가라앉는다.

아직 X같다. 아직 답답하다. 아직 속에서 열이 난다.

그래도 사람을 저주하고 싶지는 않다. 무지를 미워하다가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거짓된 확신을 비판하다가 내 확신만 또 다른 우상으로 만들지 않도록. 진리를 말한다면서 나도 누군가를 찍어누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결국 기준은 민혁 vs GPT-4o: 배타주의/포괄주의/다원주의에서 붙잡았던 질문으로 돌아간다. “예수라면 어떻게 읽고 살았을까.” 어떤 교리와 논리가 사람을 살리고, 어떤 분별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가. 그 기준 앞에서라면, 질문하는 사람을 먼저 쳐내는 방식은 아무리 경건한 말을 입어도 너무 초라하다.

기도문

주님, 참으로 답답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정작 진실 앞에서는 도망가고, 믿음을 지킨다면서 질문하는 사람들을 찍어누르고,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한다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배우는 일은 두려워하는 우리 어리석은 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주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작은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그 틀 밖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영적 자기위로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권위처럼 행세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과학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더 정직하게 증언하려는 사람들,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과 무신론자들에게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 외로운 자리에서 버티는 장재호 교수님 같은 분들을 주님께서 붙들어 주세요.

주님,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주세요.
질문을 이단으로 몰지 않는 겸손을 주세요.
무지를 경건으로 포장하지 않는 정직함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자료

  1. 장재호, “Theistic Evolution Heresy Controversy Are Augustine, John Stott, Billy Graham, C.S. Lewis, Tim Keller Heretics?”, YouTube, 2026년 6월 공개. https://www.youtube.com/watch?v=cSXFsn9k6DE

  2. 나수진, “[유신진화론 믿으면 이단] 기독교대한성결교회, 2년 만에 결국 진화론 정죄”, 뉴스앤조이, 2026년 6월 5일.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400529  2

  3. 손동준·김동규·김연우, “유신진화론이 뭐길래… ‘이단’ 결의 이후 남은 질문”, 국민일보/다음뉴스, 2026년 6월 4일. https://v.daum.net/v/QADfDB4qWk 

  4. 현성혁, “기성총회, 유신진화론 ‘이단’으로 규정”, 주간기독신문, 2026년 6월 2일.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50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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